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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 여행 & 등산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한국7대사찰

by e1mo518518 2018.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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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1. 대흥사(전남 해남)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www.daeheungsa.co.kr

2. 마곡사(충남 공주) :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www.magoksa.or.kr

3. 법주사(충북 보은)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www.beopjusa.org

4. 봉정사(경북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www.bongjeongsa.org

5. 부석사(경북 영주)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www.pusoksa.org

6. 선암사(전남 순천)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www.seonamsa.net

7. 통도사(경남 양산)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www.tongdosa.or.kr

 

1. 대흥사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의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이며,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이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년(선조 37) 서산이 자신의 의발[2](衣鉢)을 이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이때 서산대사는 삼재가 들어오지 않아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고, 6.25전쟁중에 해남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했음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입구 앞에서는 사적지로 지정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로 향하던 해남 군민들이 떠나기 전에 음료와 식사를 제공했던 공터가 있다.

경내에는 대웅보전, 침계루,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응진전, 용화당, 표충사, 서산대사기념관, 대광명전, 만일암 등의 건물, 응진전 앞 3층석탑, 북미륵암 3층석탑이 있다. 그 외에 국보로 지정된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서산대사를 비롯한 여러 유명한 스님의 부도(浮屠, 사리)와 탑이 있다. 대흥사 뒤편을 따라 올라가면 다승 초의선사가 기거하던 일지암이 있으며, 현재도 대흥사에서는 매년 초의선사 문화제를 통해 다례를 전파하는 행사를 갖는다.

주변의 두륜산미황사땅끝마을 등과 연계해서 찾는 관광객들이 많다.

2017년 5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대흥사는 특별한 인연을 밝히면서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왜냐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1978년에 약 8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시공부에 정진해 1차시험에 합격한 특별한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흥사는 당시 대통령이 공부했던 방[3]을 언론에 공개하며 촬영을 허락했다. 

교통은 조금 불편하다. 해남군 전체에서도 상당히 깊숙하게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나들목인 남해고속도로 강진무위사IC에서도 30km 이상을 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해남종합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대흥사 밑 주차장의 정류장까지 가는 농어촌버스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출처 : 나무위키>

1. Daeheungsa

It is a temple in the Duryunsan Provincial Park in Gurim-ri, Samsan-myeon, Haenam-gun, Jeollanam-do. It is also called Daedunsa Temple. It is the headquarters of the 22nd Diocese of the Buddhist Jogye Order of Korea.

It is famous for the place where there was the head of a monk who was accompanied by Seishan Daishi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Japan. In 1604 (ancestor 37), Seosan was said to have been greatly encouraged after he delivered his clothes [2] (衣 鉢) to this place. At that time, Seosan Daejang said that there was no destruction due to the absence of Samjae and it was not damaged even though Haenam was occupied by North Korean Army during the Korean War. In front of the entrance, there is an open space where the citizens of Hainan, who were heading to Gwangju during the 5.18 democracy movement designated as a historic site, provided drinks and meals before leaving.

 

Inside the precincts are the Daeungbo-gun, Seomil-gun, Seokwonjeon, Nahanjeon, Cheonbuljeon, Yeonjangjeon, Yonghwadang, Pyeongchungsa, Seosan Ambassador's Memorial, Daeungwangmyeongjeon, In addition, there is a statue of Maitreya, designated as a national treasure, in North Myrrh. There are many Buddhist monks Buddhist monks and Buddhist monks, including Seosan Ambassador. There is Iljima where Daeheung Temple is located, and Daeheung Temple has an event to spread Daejung through the prehistoric festival every year.

There are a lot of tourists looking around in connection with the surrounding Duryunsan, Miwangsa temple,

After the 19th Presidential election in May 2017, Daeheung embarked on a banner to celebrate the election, expressing special ties. The reason is because President Moon Jae - in stayed in 1978 for about 8 months, and he has devoted himself to the study of sashes and has passed the first examination. Daeheung allowed the filming of the room [3] that the President was studying at the time to the press.

Traffic is a little uncomfortable. It is a place that needs to be penetrated deeply in whole of Haenam county. The nearest expressway junction, Namhae Expressway, Kangjin Muju-IC, should go more than 30km. If you use public transportation, there are buses for farming and fishing villages from the Haenam bus terminal stop to Daehungseon bus stop.

The World Heritage Committee (WHC), which decides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List, has registered World Heritage sites in the 42nd meeting in Bahrain on June 30, 2018 in Manama, Bahrain. There are two types of Sansa in Korea: Yangsan Tongdosa, Yeongju Bongseo, Andong Dongjeongsa, Boeunjungsusa, Kongju Magoksa, Suncheon Sunam and Haenam Daeheung.

 

2. 마곡사

개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Buddhist Mountain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내용

마곡사가 위치한 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월정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 수우()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31본산()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이 절은 김구()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이요 법명은 원종()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를 사이에 두고 보물 제801호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과 보물 제800호인 공주 마곡사 영산전(殿), 보물 제802호로서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 해탈문, 천왕문, 16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殿), 명부전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이 ㄷ자형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과 매화당()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염화당()·연화당()·매화당() 등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의 글씨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밖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69-1호로 지정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과 보물 제270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마곡사 동제 은입사향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마곡사 동종 등이 있다.

이 중 오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 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무너져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오래이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이 탑은 전 국민의 3일 기근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국·인도·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나갔다고 한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부용암()·북가섭암()·토굴암()·백련암()·영은암()·대원암()·은적암() 등이 있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곡사 [麻谷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Opened

It is the head temple of the 6th Kyonggi Buddhist Jogye Order of Korea. In June 2018, it was listed on the UNESCO World Heritage Site under the name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Contents

The shape of the water and mountains at the place where Magok is located is called Taegeukgeong, and it is considered as one of the tenchuji grounds which can avoid the warlords in various words such as "Taegeji" and "Jeongseongrok". There are two theories about the foundation and temple name of the temple. The first theory is that the Jijang, who returned from the Tang Dynasty in 640 (King Seondeok 9), was looking for a place to build the temple of the 200th Condemnation given by King Seondeok, It is said that this temple was founded together with the temple.

It is said that the people who came to hear his law when he finished the temple and completed the temple were called 'Marajo' by saying 'Mara' and saying 'Mara'. The second theory is that when Silla returned from the Tang Dynasty and built this temple, it was called Magogus in order to marry the teacher, Madoguobutori. Before establishing the temple, There is a theory that it was called Magogus because people who had sex were living.

This temple has been used for about 200 years from the end of Silla to Goryeo in the year of 1172 (Myeongjong 2), when it was used as a cave of thieves, ) And received a royal name. When the assistant first tried to fasten the temple, he ordered the thieves to retreat, but the thieves tried to harm the state. As a result, the assistant was blown into the air and made many tigers as a sword, and rushed to the thief, and the thieves vowed to run away or swore to be a good man.

The assistant who recovered the temple from the thieves received the king's answer from the king and made a great priest. The building at that time was overtaken by the present ship, but most of it burned dow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After 60 years, he became a warrior, and in 1651 (Hyojong 2), Gyerun succeeded in repairing Daeungjeon, Youngsan and Daejeonjeon. During the 31st Bonan Period of the Japanese colonial rule, it became the main mountain to preside over 100 temples in the province.

This temple is also closely connected with Kim Ku. Kim, who killed a Japanese officer Tsuchida, who participated in the Empress of the Empress of the Ming Dynasty, at Chiharu Punaru in Anhua, Anqi, escaped from prison at Incheon prison and lived in this temple, hiding in the temple and pretending to be a monk. Even now, Daegwangmyeongjeon is located in front of a jungbu (tree) planted by Kimgu, and next to it is a signpost that says 'Kimgu is a pseudonym and a law name is uan sect'. Presently, this section presides over 70 horses in Chungcheongnam - do.

The existing building is the Treasure No. 801, Princess Magogus Daeungbo-jeon and the Treasure No. 800, Yeongsan-dong, Treasure No. 802, There is a bowel movement in which the kidneys of the Nahan and two wards are gathered and a bowel movement. On the opposite side of the bow, there is a umbrella,堂) is largely situated in the shape of the C-shape.

In addition, beside the temple, there are the Hwangan-dong and the 梅花 堂. In addition to this, there is also a Buddhist temple where Buddhist monks, such as Chonghwadang, Renge-dong and 梅花 堂, There are so many. Among these buildings, Yeongsanjeon is the oldest building in this section and represents the wooden architecture style of the mid Joseon Dynasty. It is a handwriting written by Sejo, who came to this temple to meet Kim Si-shu (Kim time), but left without seeing it.

In addition, the Daeungbokbojeon was the order of 1651, and it is not certain that the front version is written by Kim, Kim. It is an unusual two-story building. It is a valuable cultural asset to understand the temple style of the middle of the Joseon Dynasty. It is a legend that it is six years of longevity if you walk around the pillar of the building.

Other important cultural assets include the Detecting Ginny Dragon Form 6 designated as Treasure No. 269-1, the Nine Myth of the Dragon Formation 1 and Treasure No. 270, the Five Storied Pagoda of the Princess designated as Treasure No. 799, the Treasure No. 1260, Princess Marugoki, It is a Buddhist monastery of the Chungcheongnam - do tangible cultural property No. 20.

The five-storied stone pagoda is also known as the Wind Pavilion, which is similar to the one-lama Pagoda. The tower collaps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and the treasures inside the tower had been stolen for a long time. The tower is said to be worthy of stopping the nation's 3-day famine and is said to be a valuable tower with only three in the world such as Korea, India and China.

In addition, Dae Kwang-Bo-bo-mon floor has about 30 pyeong made of bark. Here is the following story. In the late Joseon Dynasty, a nameless Buddhist monk came to this temple and gave a day prayer to the Buddha. While he was praying for a hundred days to heal his discomfort, he wiped out the place. This place was made by joining an oak at one end and a line after another, and he prayed that he would make his own cripple to the Virozanabu, which was sealed in the hall, After a hundred days, he had finished his work and walked out the door of the courtroom without knowing himself.

The adjuncts are as follows: Shimjeongam, Buongyam, Buksaeam, Togolam, Baekryeonam, Young-eun, Daewonam and Silver Rock (隱 寂 庵). This section is famous for its spring scenery, which is said to be the word "Chunmagok Chusa (春 麻 谷 秋甲甲寺)". The view from Baekryeongmam is especially prominent, and Chunmyung General Water, which is located behind the rock of North Goseong-gun, is an excellent branch. In addition, there is a goranko that is known to exist only in the Goryeo Gorge of Guri in front of the Goryeo Rock.

[Naver Knowledge Encyclopedia] Marugami [麻 谷 寺] (Korean National Cultural Association, Korea Research Institute)

 

 

 

3. 법주사

역사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문화재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

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http://www.beopjusa.org/

 

대한불교 조계종 법주사

멋있는 단풍이 있는 법주사쾌청한 하늘, 풍성한 단풍과 함께하는 법주사큰 도움을 주고, 즐거울 때에나 괴로울 때에나 변하지 않으며, 좋은말을 해주고 동정심이 많은 친구가 되라-법구경-

www.beopjusa.org

 

http://kko.to/fohFPC9A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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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봉정사

역사
봉정사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는 곳으로 알려졌으나, 6.25 전쟁 때 사찰에 있던 경전과 사지(寺誌) 등이 소실되어, 몇 가지 설화 외에는 그 역사의 근거가 되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이 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능인대덕이 수도를 한 후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만들어 날렸는데,이 종이 봉황이 앉은 곳에 절을 짓고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구체적인 역사도 전하지 않지만, 참선도량(參禪道場)으로 이름을 떨쳤을 때에는 부속 암자가 9개나 있었다고 전한다. 1972년에 실시된 극락전 해체 복원 작업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극락전의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았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인정받아 국보15호로 인정되었다. 극락전의 건립 연대는 적어도 12세기 이전으로 추정된다.

2000년 2월의 대웅전 지붕보수공사 과정에서는 사찰의 창건 연대를 기록한 상량문이 발견되었고, 대웅전 내 목조 불단에서는 고려말에 제작한 묵서가 발견되었다. 상량문은 1435년 쓴 것으로 창건 후 500여 년 만에 사찰을 중창한다는 구절과 봉정사의 사찰 규모에 대한 기록이 있어 창건 연대의 추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신축, 단청을 한 시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은 토지 등의 내용에 미루어볼 때, 조선초 당시 봉정사는 <팔만대장경>을 보유했으며, 500여결(1만여 평)의 논밭과 100여 명의 스님이 안거하던 대찰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요 문화재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311호인 대웅전, 보물 제1614호 후불벽화, 보물 제1620호 목조관세음보살좌상, 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 중암이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출처 : 다음 백과사전>

 

 

http://www.bongjeongsa.org/

 

세계문화유산 봉정사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아름다운 천등산 봉정사 봉정사를 찾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가정이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www.bongjeo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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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석사

역사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의상전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또는 흥교사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과 징효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주요 문화재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을 비롯하여 원각전·응진전·안양루·선묘각·범종루·자인당 등 조선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무량수전앞석등(국보 제17호)·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3층석탑(보물 제249호)·당간지주(보물 제255호)·고려판각(보물 제735호)·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있는 석룡·대석단·선묘정·녹유전·선비화 등이 전해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1천 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 7곳 가운데 하나로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13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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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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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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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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